Broken-scape Series
A Broken Landscape (부서진 풍경) 2017
아랍권의 2011년 민주화 움직임 중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서방세계에 의해 제거된 사건은 핵을 포기하면 카다피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경각심에 북한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973년의 4차 중동전쟁 이후 리비아가 주도한,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OPEC의 석유수출을 중단은 세계적인 1차 오일쇼크를 불러왔다. 그 충격으로 한국은 산업화에 필수인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중동 진출을 적극 장려했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강의 기적’의 토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가 이처럼 얼핏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리비아와 여러 각도에서 교차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화된 지구에 있어서는 그 어떤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도 연쇄작용을 통해 서로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나의 리비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사실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기인한다. 추억이 여려있는 땅이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는 것은 비록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서라고 해도 마음이 아린 경험이다. 서방의 개입에 의해 촉발된 리비아의 끝없는 내전과 혼란에 대해 사람들과 언론이 보이던 무심한 태도는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에 대한 관심과 애도의 물결과 강하게 대비된다. 그러나 자살폭탄테러를 일으킨 리비아계 청년은 갑자기 튀어나온 악마가 아닌, 우리의 관심영역 밖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온 사건들 속에서 빚어진 안타까운 인격체이다. 이 알 수 없는 청년에게서 나는 어린 시절 나에게 돌을 던지던 리비아의 꼬마아이들을 떠올린다. 길에서 종종 마주치던 꼬마들은 거리를 두고 주위를 맴돌며 작은 돌 조각들을 던져대곤 했었다. 당시로선 단지 화가 나던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나중에 와서 되돌아보면 큰 의문을 낳는다. 돌을 던지는 것은 아이들이지만 그 어린 꼬마들이 외지인에게 돌을 던지게 만드는, 뒤에 숨어있는 힘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에는 비합리적이고 불평등적인 속성과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인간 본성의 단면들이 드리워져 있다. 비가시적 층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역학 관계, 인과 관계는 자신도 모르게 가시적인 선과 악, 우군과 적군, 그리고 우리의 입장과 그들의 입장을 경계짓게 한다.